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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외 가르멜 성인들

우리 성조 엘리야 예언자

엘리야 예언자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하느님의 사람으로서 항상 하느 님의 현존 안에 살았으며, 한 분이신 참 하느님을 큰 열정을 갖고 흠숭하며 그분을 위하여 싸웠다. 가르멜 산 위에서는 하느님의 법을 공공연하게 수호했으며, 호렙 산에서는 살아계신 하느님을 깊이 체험 했다. 그러므로 가르멜회의 초대 은수자들은 이 전통을 따라 엘리야 를 자기들의 모범으로 삼았고, 12세기에는 가르멜 산의 동정 마리아 를 공경하기 위하여 수도생활을 시작하는 이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 들은 자기들의 생활양식을 이 위대한 예언자와 성모님에게서 본떴다.

가르멜 산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가르멜 산은 엘리야 예언자가 살아 계신 하느님께 대한 이스라엘의 순수한 신앙을 증명한, 성경에 나오는 유명한 곳이다. 그 곳에 있는 샘은 엘리야 예언자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는데, 12세기 말엽 은수 자들이 그 곳에 자리 잡고 성모님을 위하여 경당을 마련하고 자신들 을 ‘가르멜 산의 성모 마리아의 형제들’이라고 스스로 칭한 것이 가 르멜회의 공식적 기원이다. 그들은 성모님을 자기들의 수호자이자 참 어머니로 모시고, 그분의 표양을 따라 관상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 안 에서 친교를 맺고 있는 다른 형제들을 도와주었다. 14세기에 이르러 이 사실이 널리 알려져 여러 곳에서 이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으며, 차 츰 가르멜 수도회 전체에 걸쳐 성대히 기념하게 되었다. 가르멜 수 도회의 으뜸가는 자리를 차지하는 이 축일은 보호자이신 성모님께서 가르멜 수도회에 베풀어 주신 무수한 은혜에 대한 감사를 표시하기 위함이다.

성 알베르토 주교

12세기 중엽 이탈리아 괄티에리 성에서 태어났다. 모르타라의 성 십 자가 수도회에 입회했고, 1180년에 총원장으로 선출되었다. 1184년 보비오의 주교가 되었다가 1185년 베르첼리의 주교로 전임되었다. 1205년에는 예루살렘의 총대주교로 임명되었다. 말과 행동으로 모범 을 보인 착한 목자였으며, 평화의 사도로서의 직무를 다하였다. 총대 주교로 있는 동안(1206-1214) 가르멜 산의 은수자들을 한 단체로 모아 그들에게 수도규칙을 정해 주었다. 그릇된 행위 때문에 성인으 로부터 책망 받고 해직 당한 성령 병원 책임자에 의해 1214년 9월 14일 아콘에서 살해되었다.

강생의 복녀 마리아

1566년 파리에서 태어났다. 16세 때 베드로 아카리와 결혼하여 일 곱 자녀를 두었다. 그녀는 가사일과 많은 어려움을 통해 신비생활의 높은 단계에 도달했다. 데레사 성녀의 저서에 감화를 받고, 성녀와의 신비적 만남 후에 가르멜 수녀들을 프랑스 지방에 오게 하는데 노력 했다. 남편과 사별한 후 평수녀로 입회를 청하여, 강생의 마리아라는 수도명을 받고 1615년 아미앵 수도원에서 서원했다. 프란치스코 드 살 성인을 포함한 당대의 고명한 인사들로부터 높이 평가받았고, 기 도의 정신과 가톨릭 신앙 전파에 열성이 뛰어났다. 1618년 4월 18 일 퐁투아즈에서 세상을 떠났다.

성 시몬 스톡

시몬은 영국인으로 13세기 중반에 가르멜회의 총장이었으며 보르도에 서 세상을 떠났다. 시몬이 복되신 동정 마리아께 가르멜회에 은총을 베풀어 주십사 하고 청하자 성모님께서 그에게 갈색 스카풀라를 주셨 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는 개인적 거룩함과 가르멜 산 성모님께 대한 신심으로 가르멜 수도회에서 존경을 받아왔다. 15세기에 들어 그를 공경하는 전례적 기념이 보르도 지역에서 거행되다가 후에 가르 멜 수도회 전체로 확대되었다.

파치의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1566년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열심한 가문 출신으로 훌륭한 종교 교 육을 받은 후 가르멜 수도원에 들어가 기도와 극기의 숨은 생활을 하 고, 교회의 개혁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였으며, 많은 수녀들을 완덕 의 길로 인도했다. 하느님으로부터 많은 영적 은혜를 받고 1607년 세상을 떠났다.

성 바르톨로메오의 복녀 안나

1549년 카스티야의 알멘드랄에서 태어났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에 의해 아빌라의 성 요셉 개혁 가르멜 수도원의 첫 지원자로 받아들여 졌다. 1572년 맨발 가르멜 수녀로 서원했으며, 데레사 성녀의 동반 자이자 간호 수녀로 선택되었다. 데레사의 정신에 따라 프랑스와 플 랑드르 지방에 많은 맨발 가르멜 수도원들을 세웠으며, 데레사와 같 이 영혼 구원의 열정에 불타는 교회의 딸임을 입증했다. 1626년 안 트베르펜에서 세상을 떠났다.

성 아우구스티노의 복녀 데레사와 동료 순교자

프랑스 혁명이 나쁜 방향으로 기울기 시작할 무렵, 콩피에뉴시에 있 던 거룩한 강생 맨발 가르멜 수도원의 16명의 수녀들은 하느님의 정 의 실현과 교회의 평화를 위하여 자신들을 하느님께 제물로 바쳤다. 이들은 1794년 6월 24일에 체포되어 투옥되었으며, 하느님께 대한 절대적 믿음과 그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으로 주위 사람들을 격려 하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 수녀들은 교회에 충성을 다하며 수도자라는 이유와 예수 마리아 성심에 대한 신심 때 문에 사형 판결을 받고, 1794년 7월 17일 찬미가를 부르며 성 아 우구스티노의 데레사 원장 수녀의 손을 잡고 서원을 갱신하면서 파리 에서 순교했다.

트라파니의 성 알베르토

알베르토는 13세기에 시칠리아 섬의 트라파니에서 태어났다. 청년시 절에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하였고, 복음 설교의 열정과 기적을 행하 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1296년 수도회의 시칠리아 관구장이 되었고, 순결과 기도의 정신으로 존경을 받았다. 1307년경 메시나에서 세상 을 떠났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의 복녀 마리아

1846년 갈릴래아 지방 아벨린의 그리스 정교를 믿는 바오와르디 가 정에서 태어났다. 1867년 프랑스의 포에 있는 맨발 가르멜 수도원 에 입회했으며, 그 후 인도의 망갈로르의 가르멜 수도회 창설 그룹 의 일원으로 파견되어 1870년 그곳에서 서원했다. 1872년 프랑스로 되돌아 왔으며, 1875년 이스라엘로 가서 베들레헴에 수도원을 세웠 고, 나자렛에도 수도원을 세울 계획을 했다. 하느님께 받은 초자연적 은총들, 특히 겸손, 성령께 대한 신심, 그리고 교회와 교황에 대한 큰 사랑이 뛰어났으며, 1878년 베들레헴 가르멜 수도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예수 성심의 성녀 데레사 마르가리타

1747년 토스카나 지방 아레초의 레디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1764년 9월 1일 피렌체의 맨발 가르멜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특 히 사도 요한의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라는 말씀에 바탕을 둔 특 별한 관상적 체험을 하였으며, 사랑과 자기희생의 숨은 생활에 강 한 성소를 느껴 이를 실천하였고, 자매들에 대한 영웅적 애덕 행위 로 이를 증명하였다. 1770년 피렌체에서 2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예수의 복녀 마리아

1560년 스페인의 타르타네도에서 태어났다. 1577년 톨레도의 맨발 가르멜 수도원에 입회하여, 1578년 서원했다. 1585년 쿠에르바 수 도원 창립에 협력한 몇 달을 제외하고는 1640년 9월13일 세상을 떠 나기까지 하느님 찬미에 자신을 바치면서 톨레도에서 일생을 보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로부터 지극한 사랑을 받았으며, 특별히 그리스도 의 신비에 대한 탁월한 관상으로 뛰어났고, 전례 안에서 이것을 꽃 피웠다.

성탄의 복자 디오니시오 사제와 십자가의 복자 레뎀시오

베드로 베르트롯, 후에 성탄의 디오니시오 사제는 1600년 프랑스 혼 플레르에서 태어났다. 포르투갈과 프랑스 왕의 지도제작자이며 해군 지휘관으로 봉사하다가 1635년 인도 고아의 맨발 가르멜 수도자가 되었다. 토마스 로드리게스는 1598년에 태어났으며 1615년 같은 곳(고아)의 가르멜 수도회에서 평수사로 서원을 했다. 그는 십자가로부터 구원된 자라는 뜻에서 ‘레뎀시오’라는 수도명을 가졌다. 두 사람은 인도네시 아 수마트라 섬에 파견되어 1638년 11월29일 아켄에서 신앙을 항 구히 지키다가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순교했다.

복자 마리아 에우제니오

1894년 12월 2일 프랑스의 중앙 산악 지대인 구아에서 태어나 앙리 그리알루라는 이름을 받았다. 1922년 2월 4일 사제로 서품되었고 16일 후 파리 근교에 있는 아봉 가르멜 수도회에 입회했다. 1937년 가르멜의 부총장에 임명되었고 1954년 5월 10일 가르멜의 총장이 멕시코 여행 중 사망하자 그 때부터 1955년까지 총장 서리로 머물렀다. 그는 하느님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깊이 간직하고서, 침묵과 기도로써 또한 신자들을 위로하는 사목으로서 또한 저술로서 지치지 않고 하느님을 위해 일하였다. 노틀담드뷔 재속회를 창립하셨다. 1967년 서거하셨다. 2016년 11월19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에 의해 시복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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